KECPO

김지민의 라벨 작업은 2004년 영국 유학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는 리바이스 라벨 수천 개를 이어 붙여 바지, 스카프, 장갑 등을 만들었다. 리바이스의 진본을 증명하는 리바이스 라벨로 제작된 바지는 소비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리를 유쾌하게 드러낸 시도였으며, 더불어 새로운 재료의 가능성을 모색한 과감한 실험이었다. 우리가 실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상품의 라벨. 상품에 비해 작고,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 종종 그 실체를 잊기 쉽지만, 라벨은 그 상품의 가치를 직설적으로 보증한다는 점에서 매우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는 이 평범하고 독특한 재료를 활용함으로써 하나의 입체적 형태를 만들고, 그 형태를 공간에 위치시켜 공간과 조응할 수 있는 예술작품을 탄생시킨다. 

라벨이 가진 고유의 의미와 역할은 오로지 라벨 앞면에 존재한다. 즉 헝겊에 어떤 문자와 어떤 이미지를 새겼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 나아가 고급 브랜드 라벨의 경우, 라벨은 라벨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소비사회에 있어 자본의 속성을 보여주는 지표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의외로 라벨 뒷면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만약 우리가 우연히 라벨의 뒷면을 본다면, 정돈이 잘된 앞면과 달리 실들이 엉성하게 얽혀 있는 모양을 보게 될 것이다.
 이전까지 앞면을 주로 이용했던 김지민은 이제 로고가 보이지 않게 라벨을 뒤집는다. 로고에 새겨진 복잡한 의미를 뒤로 하고, 라벨 뒷면을 형성하는 실들의 색깔에 주목한다. 다시 말해 라벨 뒷면을 일종의 색채로 인지하여, 회화의 물감처럼, 라벨을 하나의 물감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 당시 경향의 대표작이 바로 ‘the fan’ 시리즈이다. 그는 라벨을 규칙적이고 정교하게 나열하여 커다란 원을 만들었다. 작업이 완성되어 추상적 문양의 원이 되었을 때, 시각적 착시 현상이 발생하여, 뭔가 돌아가거나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나타난다. 그것은 마치 사람들이 소비주의에 매몰된 것과 흡사하다. 

‘the fan’ 시리즈는 특정 공간에 작품을 설치하기에 공간과 깊은 연관성을 가진다. 비록 ‘fan’ 작업이 평면적 형태를 띤다고 생각할 수 있더라도, 엄밀히 말하자면 라벨도 높낮이가 있다. 작가는 이 평면 같은 입체를 공간에 배치하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공간을 해석하며, 그 해석을 통해 공간을 하나씩 점령해 나간다. 따라서 ‘the fan’ 작업은 설치 개념에 가깝다. 물론 설치를 위한 시간도 상당히 필요하다. 그래서 김지민은 종종 그 설치 과정을 영상에 담기도 하였다. 
 

특정 공간에 일시적으로 설치하는 ‘the fan’ 작업을 위해서는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는 블루 택(Blu Tack)이라는 접착제가 동원된다. 그런 측면에서 ‘the fan’은 일회성과 장소성이 강할 수밖에 없었다. 2005년 11월 한국 귀국 후, 갤러리로부터 많은 시간을 배정받을 수 없었던 김지민은 새로운 방법을 연구한다. 그것은 라벨들을 ‘바느질’로 고정시켜 영속성을 갖게 하는 것이다. 당연히 설치 시간을 줄이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바느질한 작품의 한쪽은 라벨의 앞부분으로 구성되었고, 다른 쪽은 라벨의 뒷부분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므로 보는 방향에 따라 각기 다른 무늬와 색채를 접하게 된다. 작가는 이러한 양면성에 기초하여 ‘oxymoron’ 연작을 발전시켰다. ‘oxymoron’은 상반된 두개의 개념이 합쳐진 수사학적 표현을 지시한다. ‘oxy’는 그리스어로 ‘sharp’를 뜻하고, ‘moros’는 ‘dull’을 뜻하기에, ‘oxymoron’이란 단어 자체도 ‘oxymoron’이다. (例, alone together, same difference, jumbo shrimp 등)
 이 시리즈의 대표작은 물고기를 시각화한 <the oxymoron 2007>이다. 사람의 앞과 뒤라는 기준에서 보면, 물고기의 앞과 뒤는 비교적 모호하다. 오히려 물고기는 옆면이 앞면의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이 우리의 통념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것을 포착하기 위해 아마도 그가 물고기를 소재로 선택한 것 같다. 이 작품에서 라벨 앞면으로 이루어진 물고기 형상과 라벨 뒷면으로 이루어진 물고기 형상은 개념적으로 서로 거리가 있다. 뒷부분은 작가가 추구하는 색의 미 혹은 색의 조합에 대한 이야기이고, 앞부분은 로고의 덩어리, 즉 단순히 물고기 형상을 뛰어넘어 다른 어떤 것을 시사한다. 물고기라는 하나의 형상과 공간 안에, 성질이 다른 것들이 함께 존재하게 된다. 이는 oxymoron의 의미와 마찬가지로 이질적인 것의 공존이다. 

 또한 김지민은 <the oxymoron 2007>를 바닥에 놓거나 벽에 걸지 않았고, 6폭의 병풍에 물고기를 붙였다. 조각을 전공한 그는 이 물고기가 공간과 마주하여 보다 입체적 생기를 갖기를 원하였다. 병풍의 꺾이는 각도에 따라 물고기를 다소 굴곡 있게 부착하여 물고기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운동감을 강조한다. 

 이번 개인전에는 <the China flag>, <the head>, <the big micky bomb>, <the micky bombs>, <drawing>, <the wave> 등의 작업이 출품되었다. 
 먼저 <the China flag>를 멀리서 보면 중국 국기 같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리바이스 라벨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성기가 발산하는 폐쇄적인 공산국가의 뉘앙스와 개혁·개방 정책에 따른 자본주의의 침입이라는 이중적 시각이 이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the head>는 스포츠용품 회사 ‘헤드’의 라벨로 닭의 머리를 제작한 것이다. 닭은 일반적으로 지능이 떨어지는 조류로 알려져 있는 반면, 헤드는 우두머리를 상징한다. 역시 모순어법과 반전의 위트가 돋보인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the big micky bomb>이다. 폭탄이 땅에 박혀있으며, 특히 밑 부분은 폭탄이 터지고 있는 모습이다. 폭탄 윗부분에는 두 개의 원형 날개가 있는데, 이것은 미키마우스를 연상시킨다. 김지민은 미키마우스를 자본주의 문화산업을 대변하는 아이콘으로 간주한다. 이미 다국적 기업들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그들의 영향력을 넓혀가며, 각 나라들을 상업적으로 점령하고 있다. 작가는 이런 현실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이 폭탄을 ‘micky bomb’이라 지칭한다. 
 그리고 그는 말랑말랑한 원통형 쿠션에 둥근 원을 붙인 <the micky bomb> 30개를 전시장에 배치하였다. 작은 크기의 이 물건은 한편으로 폭탄처럼 보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미키마우스처럼 보인다. 달콤한 롤리팝 사탕 같은 이 조그만 폭탄들은 귀엽게 터질 것 같지만, 사실상 굉장히 위험하고 무시무시한 무기들이다. 
 <drawing>은 특수 제작 라벨이다. 라벨의 형식을 띠고 있는 천에 작가는 ‘micky bomb’ 이미지를 각각 새겼다. 작업은 자수 같은 형태를 취하며 라벨과 회화의 경계에 있게 된다. 
 
-류한승(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