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아이콘들
김미진 (예술의 전당 전시예술감독, 홍익대 미술대학원 부교수)
인류가 사물을 만들어 문명을 일으킨 후 점점 발전을 더하여 물질계는 시간과 공간까지도 점령하고 있다. 정신이 추구하던 순수나 형이상학은 저만치 달아나고 온통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물질위주의 환경에 의해 지배받고 있는 실정이다.
상품의 ‘라벨’을 소재로 시대를 상징하는 대중적 아이콘 작업을 해 오고 있던 김지민은 이번 전시에서는 각 세대를 대변하는 일반인이 추구하는 욕망의 대상과 기호를 조각설치와 사진작업으로 보여준다. 각 등장인물을 보면 인형을 안고 있는 여자아이, 무릎에 손을 얹고 골똘하게 몰입하고 있는 남자아이, 책을 들고 있는 20대 여대생, 한손에 가방을 들고 바쁘게 회사에 가는 30대 회사원, 중년 아주머니, 어느 정도 안정적인 삶을 가진 50대 남자, 인간의 애완동물인 고양이와 개로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대표성을 띄게 하고 있다.
현대인들은 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자신이 속한 연령 대와 계급계층에 따른 소비를 탐닉하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고 있다. 곰 인형을 안고 있는 여자아이는 맥도날드에서 주는 해피밀 장남감과 인형에, 같은 또래 남자아이는 게임에 열광한다. 20대 여대생은 신상(신제품을 의미하는 신조어) 명품에 몰입하며, 30대 회사원은 외형이 화려하고 멋진 스포츠카를 열망한다. 중년 아주머니는 주름을 제거하고 탄력으로 젊음을 가져다주는 기능성 화장품에 관심을 갖고, 안정된 삶을 가진 50대 아저씨는 중후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외제세단차를 타고 싶어 한다. 그리고 개와 고양이는 그들의 먹이에만 관심을 갖는다.
각 인물의 얼굴은 라벨로 둥글게 처리되어 있고 볼록 투명 렌즈로 덮여 있어 가까이 가면 작게 접합된 이미지들이 자세히 보인다. 김지민은 각 인물들이 추구하는 욕망의 대상인 상표나 이미지를 컴퓨터를 이용해 정교하게 오리고 접합시켜 하나의 둥근 라벨로 만든다. 이것은 실제지만 사이버공간에서도 사용되고 통용되는 이미지이며 실제와 가상공간에서의 혼합된 작업이기도 하다. 김지민은 실제와 실재 그리고 사이버 공간 안에서 눈으로 체험되는 모든 욕망이 인간의 영혼을 흔들며 잠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눈동자처럼 보이는 인체는 오직 보는 것, 보이는 것에 현혹되어 살아가는 현재 우리들의 초상이다. 물질에 빨려 들어가며 오직 탐욕적인 소비유형의 혜택을 받고 살아온 시대의 기호이기도 하다.
김지민의 인물상은 물질을 향한 목적의 삶, 그리고 그것에 의해 무성화 된 흰색의 몸을 통해 허(虛)와 공(空)의 상태를 보여준다. 이것은 17세기 작품에서 정물들과 함께 한 쪽에 해골을 등장시켜서 보여 주었던 것처럼 사라져 버리는 것들에 대한 덧없음이란 바니타스(vanitas)의 새로운 현대적 해석이다.
마치 상품처럼 인간의 행복마저 살 수 있는 그래서 쉽게 망가질 수 있는 위험한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한 경종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껏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물질 이외에는 아무런 가치와 지표도 없는 무서운 세계이며 미래를 파멸로 이끌 결과다.
작품은 자칫 대중적 소재로 가볍고 팝(pop)적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단순하면서도 정교하게 완성된 작업의 결과는 새로운 미적이고 예술적인 가치를 창출한다.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작가의 실재인 자아, 그리고 수공적인 작업과 시간이 함께 투영되어 작품은 정화되고 순수하며 성스러운 가치를 지니게 된 것이다.
얼굴에 들어있는 둥근 라벨은 하나의 다른 사진작업이 되어 벽에 걸리게 된다. 각 세대별 인물들이 열망하는 상표의 집합적인 모습은 서로 사슬이 되어 얽혀 둥글게 라인을 그리며 뻗어 나간다. 그리고 복잡한 형태가 혼합되어 세대를 상징하는 색깔 톤을 만들어 낸다. 결국은 집합적인 상표가 아닌 색채와 선의 아름다운 조형성을 가진다.
이 사진도 비어있는 사각의 여백에서 선명한 원의 형태를 보여준다. 비어있는 흰색배경은 인물상들의 흰색몸통과 연계되는 목표도, 방향점도 없는 균질적인 공간이면서도 새롭게 창조될 수 있는 본질적 장소다.
지금 현재 풍요와 부의 상징이며 자본주의 세계의 중심축이 되어왔던 미국이 흔들리면서 동시에 세계 모든 나라들의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언제 어떤 상황이 올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시기이다. 경제와 기술문명의 진보는 풍요와 함께 전쟁과 생태위기의 위험도 함께 가져와 우리의 미래는 불확실하다. 인간의 본질적인 존재양식에 대한 사유보다 물질소유에 대한 경험을 많이 가지게 되는 사회구조는 깊은 내면의 존재에 대한 성찰 없이 자아 없는 흰색 인물상처럼 생산조직의 부속품이 되며 사라져 버리게 된다.
김지민은 사물예찬 마법에 걸려있는 우리시대의 초상을 기호로 표현하고 더 큰 계층이라는 사회구조를 또 하나의 라벨로 만들어내는 중층적 내용의 의미를 가지며 가볍지 않은 세련된 방법으로 이 시대의 예술을 구현해 보이고 있다.